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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 『토지』이야기 속의 내부고발

등록일 2022-09-01 17:45:46 조회수 1,245

1.

곡절이 많은 현실을 일컬어 사람들은 곧잘  “소설 같다”한다. 아니,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내부고발(또는 내부신고)이란 이름의 거사는 현실 삶에서 예사로 불법, 무법, 탈법 등의 각종 비리에 대한 견제방식 하나인 것. 삶의 속살이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도 내부고발이 빈발할 것임은 뻔한 일이다.  

 

내부고발이라면 주로 공(公)조직 속에 숨은 비리 또는 부정에 대한 대처로 알려져 있다.  아니다. 공사(公私)간에 대소(大小)간에 사람 얽힘이 있는 곳에서 각계 주인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내부고발에 관계한다. 그래서 소설이 이야기된다.

 

한국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 높이 평가받아온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안에서도 내부고발이 점철했다. 작가는 “여러 편의 소설로 자전(自傳)을 적는 사람”이라 했다. 이 말대로 20권 분량의 대하소설 『토지』 이야기 속엔 박경리 작가의 분신(分身)이라 여겨지는 주인공은 물론이고 그 인연 줄기의 인물도 내부고발에 연루되어 있다. 

 

 

2.

평사리 최참판 집 3대(代)가 제1주인공이라면 그에 버금가는 이야기 주인공 3대는 소작인 이용(李龍, 용이) 가계다. 용이의 아들이 홍(洪)이고, 홍이의 장녀가 상의(尙義)다. 

 

상의가 바로 박경리의 분신임은 대하소설 애독자들이면 이미 짐작했다. 상의는 태평양전쟁이 치열했던 1940년대 초반 진주고녀를 다니고 있었다. 

 

엄격하게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던 시절이라 그 사용의 학생에겐 처벌이 따랐다. 상의 친구들의 조선말을 내부고발했던 무용선생은 안타깝게도 바로 조선인이었다(『토지』19권, 2002, 151쪽).  

1944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4학년 수업은 전면 폐지되었다. 방공연습에다 간호교육을 받고 병원에 나가 실습을 했다. 의사들이 졸업하면 병원에 와서 일해 달라는 청도 했다. 

 

그즈음 속없는 조선인 무용선생이 있었다. 학교 뒤뜰에서 조선말을 쓰던 여학생 둘을 적발하여 교무실에다 꿇어앉혔다. 그 일은 교내에 금방 소문이 퍼졌고, 학생들은 흥분했고 분개했다. 같은 조선인이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분연히 눈총주기 등 무언의 사보타주를 감행하자 결국은 사표를 내고 떠났다.

 

내부고발이라 하면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를 대상으로 아랫사람이 고발하는 방식이 예사 아니던가. 그런데 학생 선도를 책임진 교사가 교화(敎化) 대신 학생들을 처벌 목적으로 적발하는 경우도, 그것도 피압박 조선인끼리의 경우도 내부고발이라 할 것인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던 1941년에 초등학교에 들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회상(『나의 해방전후』, 2004)에 따르면 그 전해까지는 초등학교에서도 주당 2시간 정도는 배당되었던  ‘조선어’ 시간이 1941년부터는 전폐되고 말았다. 일상생활에서도 금지하려던 것이 일제 식민정책이었던 정황에서 조선말은 사소하나마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통영초등학교 시절 박경리 동기생의 회고도 바로 그런 해프닝이었다. 

 

그 당시는 일제 강점기라 나이는 적었지만 우리 나름의 반항기질도 있었다. 수업은 물론 운동장에서 넘어질 때도 비명도 일본말로 할 정도였고, 일주일 동안 한국말을 한 번도 안 쓴 아이들에게는 상도 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싫어하고 일본말 공부를 싫어했다(김영화, “내 친구 금이야. 곱디곱던 마음처럼 좋은 날 갔구나”, 『한산신문』, 2008.5.9.).

 

 

3.

상의의 어머니 (허)보연은 통영이 친정이다. 만주 신경(오늘의 길림성 장춘)에서 사업에 여념이 없던 남편을 두고 홀로 근친(覲親)왔다. 노후생활 보험용으로 금비녀 등 금붙이를 사서갔다. 그런데 금을 판 사람이 적발되었다. 

 

그러자 그걸 산 사람도 잡으려고 형사 둘이 통영에서 들이닥쳤다. 이제 통영으로 부모의 압송 광경을 바라보는 장녀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토지』 18권, “한많은 인연”, 105-143쪽 발췌).

 

“상의는 미친 듯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임이를 떠밀었다.”
“말해요! 당신이 밀고했지요!”
“야, 야가 머라 카노?”
“형사들이 우리 집에 금비녀 있는 걸 어떻게 알아!”

 

실제 경위는 어떠했던가. 사회적으로 전쟁 양상이 깊어지면서 일제가 개인의 금  소유와 거래를 불법화시켰다. 

간단하게 말하자믄 조선서는 금 가진 사람들 모두가 국가에다 금을 팔아야 하고 개인이 금을 가지는 것을 금한다, 그러이 위법이다 그거지. 그라고 금을 나라 밖으로 실어내는 것 역시 위법이라, 밀수라는 거지. 그러이 통영서 니 어무이한테 금을 판 사람이 적발되고 보니 자연 모든 사실이 밝혀져서.  

 

가족내부적으로 임이가 혐의를 받을만한 행실의 주인공이었기에 처음엔 그녀가 고자질 했다고  두루 의심했다. 저간에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홍이 집으로 임이가 무단으로 출입하는 사이 “아편쟁이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숨겨가지고 팔아먹은 임이의 버릇”을 상의는 익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보연이 출타한 사이에 안방 주인의 장롱을 뒤지다가 상의에게 들켰던 적도 있었다(밑줄은 필자의 것), 

 

“뭐하는 거예요!”
“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방 좀 치우니라고.”
“방을 치 워요? 장롱 서랍은 왜 열려 있지요?”

 

이렇게 ‘밀고’, ‘고자질’은 주로 민간부문에서 벌어지던 내부고발의 유형인 것. 단 사회적 가치의 현창보다는 개인적 원한이 깊이 깔린 성질이기 쉬웠다.

 

 

4.

임이는 홍이의 씨 다른 누나다.  이 둘의 생모인 임이네는 타고난 성정이 그랬든가 살아온 팔자가 그런 저질을 만들었든가 소설 주요 주인공 가운데  대표적으로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영혼과 육체를 같이 주시지 않고 본능과 육체만 주셨”던 사람이었다. 

 

딸 이름을 따라 택호(宅號)가 임이네는 남편 칠성이가 살 인죄로 처형되고 나자 출분(出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지를 떠돌던 사이 입에 풀칠하려고 치마끈 풀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 평사리로 흘러 들어와선 상처한 무자식 용이와 어울렸다. 거기서 아들 홍이가 났다. 

 

평사리 모사꾼 하나가 최참판집 재산을 가로채려고 참판집 암종(女奴)을 동네 건달 칠성이로 하여금 배태시킨 뒤 당주(堂主) 최치수를 목 졸라 죽인다. 이어 암종 귀녀(貴女)의 임신이 치수의 씨앗이라고 우겨 그 많은 재산을 손에 넣으려던 음모였다. 아내 별당아씨가 집에 들인 머슴과 바람이 나서 함께 도망 가버려 독신이 되고만 치수를 음모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은 치수의 죽음이 ‘근자지소행(近者之所行)’임을 직감하곤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선다. 마침내 지근(至近)의 침모(針母) 봉순네가 직감으로 귀녀가 의심스럽다고 귀띔한다. 즉각 그녀를 고방에 가두었다. 부인의 엄명으로 “사흘 낮 사흘 밤을 귀녀는 찬물 한 모급 마시지 못했다.” 급수를 미끼로 자백을 이끌어내는 대목은 원고지 약 3만장, 종이 높이로 1.5미터 대하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서사였다(『토지』2권, 2002, 384-400쪽).   

 

봉순네의 내부고발은 확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직감으로 범죄의 행위자를 간파했다.

 

 

5.

소설에서 내부고발은 그 형태가 다양했다. 연장으로 현실에서 ‘내부’는 어디까지 상정할 것인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것이다. 

 

내가 봉직했던 대학사회는 투서가 많기로 ‘악명’높다. 그 투서들이 내부냐 아니냐를 가리기는 매우 어렵다. 대학 내부는 교직원과 학생들을 일차적으로 가리킬 것이지만, 그러면 졸업생 또는 동창생은 현직이 아니니 때문에 외부라 치부할 것인가, 그 논의는 끝이 없을 것이다.

 

내부고발이 대하소설 『토지』의 전개에 중요 고리로 작용했다. 생각해보니 내부고발은 추리소설에서 특히 중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추리극의 시발은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통화가 사건의 발단으로 작용한다. 이런 구성과 전개는 19세기말에 전화기가 발명된 이후에 일어난 양상이었다. 

 

전화기 개통처럼 각종 양상의 내부고발은 소설에서나 현실에서 사태 전개의 중요 발단임에 틀림없다. 공사 대소 우리 삶에서도 중요 발단일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2022년 08월 29일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 『박경리이야기』저자)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자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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