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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조 칼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업의 내부신고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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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10:45:06 | 1,096 |
1. 들어가면서
한국은 10대 경제 대국이다. 국토가 넓어서도 아니고 인구가 많아서도 아니다. 이 나라에서 만든 물건이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그 원재료들과 필요한 물건들이 전 세계에서 들어오고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국민이 먹고 쓰고 한 것도 적지 않지만 다른 나라와 서로 사고 판 것이 그만치 많기 때문에 세계 10위라는 높은 성까지 쌓았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10위권에 걸 맞는 세계경제 메카니즘의 무시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세계경제를 돌리는 10번째로 큰 톱니바퀴다. 톱니바퀴는 서로가 물고 물려 있어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전체가 덜컹거리게 된다. 미·중 갈등이나 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국이 제마다 다시 한 번 공급망을 챙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은 우리와 물건을 사고파는 외국 기업들의 안부에 부단히 관심을 갖는다. 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에 자금을 댄 전 세계 투자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도 그렇다. 혹시라도 우리 기업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standard)에 미달되면 거래선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단박 불안에 빠지게 된다.
내부신고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다른 나라들은 법으로 이를 강제하고 있는 데도 많다(유럽, 일본). ISO는 이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제 표준(ISO37002-2021)을 만들어 공표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무관심 그대로다. 모든 영광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 맞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할 때가 되었다.
2. 내부신고제
내부신고라 함은 기업 등의 부정·비리를 내부구성원1)이 ‘기업 내부’에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2) ‘기업 내부’에는 그 기업이 위임한 제3의 기관도 포함된다. 따라서 내부 구성원이 조직 외부(상급 및 감독기관, 언론 등)에 알리는 행위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부신고를 특별히 언급하려는 것은 이것이 갖는 제도적 실익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용에 비해 효과가 아주 크다. 부정·비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이나 EU 등에서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내부신고제(IWS: Internal Whistleblowing System)야 말로 강력한 위기관리 방법이고 잘못 다뤄 법적 책임이나 재정적 손실, 평판 손상을 막아주는 예방 수단이라고 말한다.3) ISO도 많은 조직들이 내부신고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4)
외부신고로 수습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실익이 크다. 이 밖에도 종업원이 알기만 하면 언제든지 신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부정·비리에 대한 기업 내 상시억지 작용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어디다 신고하느냐에 따라 내부신고(internal whistleblowing: hot line, help line), 외부신고(external whistleblowing)로 구분해 부르고 있다. 일본은 신고를 내부에 하면 '내부통보', 외부에 하면 '내부고발'로 구분한다. 한국은 제도로 정착하지 못하다 보니 명칭도 제 각각이다. 특히 언론에서는 둘 다 구분 없이 ‘내부고발’로 부르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3. 내부신고제 실시의 반사적 이익
기업의 부정·비리는 그 대부분이 내부구성원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미국의 경우 83%). 내부구성원 만큼 기업 일에 정통한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구성원이 알게 된 기업 내 정보를 기업의 통제 속에 수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자연스럽다.
기업이나 사회는 내부신고제 실시로 여러 반사적이 이익도 누린다. 일본 소비자청(消費者廳)의 조사(2017년)에 따르면 이 제도를 잘 운용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 자체가 올라간다는 것이 통설이다.5) 그래서 기업들은 윤리적 건강을 과시하기 위해 ‘자기적합선언’을 한다든지 ‘인증’을 서둘러 받기도 했다.
위 소비자청의 조사에 따르면 내부신고제가 잘 정비된 기업에
① 취업이나 전직을 하고 싶다가 피조사자의 82%
② 그런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고 싶다가 86%
③ 그런 기업과 거래하고 싶다가 89%나 되었다.
기업의 대표는 주주나 종업원, 거래처, 지역사회 등에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갖는다. 설명책임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기업 대표가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꿰고 있어야 한다. 내부신고제가 잘 운용되면 대표의 설명책임이 충실해진다. 결국 기업 대표의 설명책임 충실은 기업의 대외적 평판이나 가치를 끌어올려 주기 마련이다.
4. 각국의 추세
1) 미국
미국은 내부신고를 특별히 권장하거나 보호하는 법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업의 부정 · 비리 등에 대한 정보의 83% 이상이 내부신고(internal whistleblowing)에 의해 드러남을 알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를 두고 있다. 예컨대 내부신고자의 익명성 보장이나 보복 방지를 위한 법제가 있다.6)
물론 내부신고 안에는 사외 제3의 전문기관에 신고창구를 위탁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한 신고에 도움이 되어 이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장 손쉽게 윤리적 경영을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외 전문기관들은 암호기술을 사용하는 등 신고자가 염려하는 익명성 보장 등에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7)
그런가 하면 많은 포상금을 내세워 신고를 외부창구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증권위원회(SEC)의 포상제도이다. 미 정부는 2010년 새로 연방법을 제정8), 증권위가 기업의 부정·비리를 신고한 자에 포상금을 줄 수 있도록 했다.9) 이 같은 포상제는 반대로 기업으로 하여금 내부신고 내실화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2) 유럽
유럽공동체(EU)는 2019년 12월 내부신고제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내부 신고자 보호 지침(Whistleblower Protection Directive)’을 제정했다. EU는 회원국들로 하여금 이 지침에 따라 2년 이내에 국내법을 제정하도록 서두르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제투명성기구도 기업에 내부신고제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실행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10)
이 지침은 공공기관의 경우 2021년 12월부터 내부신고제를 실시하도록 했고 종업원 250명 이상의 사기업들은 이 지침 시행 후 2년 안에 내부신고 체제를 갖추도록 했다. 종업원 50~250명 규모의 기업도 국내법 입법 후 2년 이내에 내부신고 체제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11) 실질적으로 아주 작은 영세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업으로 하여금 이 제도를 갖추도록 한 셈이다. 또한 EU당국은 각국의 국내법 제정 이전이라도 기업들의 내부신고 체제 구비를 권장하고 있다.
3) 일본
일본은 우리보다 5년 앞서 2006년 ‘공익통보자보호법’을 제정, ‘내부신고’(일본에서는 ‘내부통보’라 부른다)에 대한 법제를 마련했다. 이 법은 내부신고가 기업의 부정·비리를 막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인식 아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업 내부나 기업이 위탁한 제3의 전문기관에 우선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공익통보자보호법 제3조). 재계(經団連)는 정부보다 4년이나 앞서 2002년 ‘기업행동헌장’을 고쳐 기업들에 내부신고(hotline)를 권장하고 나섰다.12)
일 정부는 기업의 내부신고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이 법을 일부 개정하여 지난 6월 발효시켰다. 개정법은 일정 규모(종업원 300명 초과) 이상의 기업에 대해 ‘내부신고’에 필요한 ‘체제 정비’를 의무화 시켰다.13) ‘체제 정비’와 상충 우려가 있는 ‘자기적합(自己適合) 선언제도’나14) ‘인증(認證)제도’는 당분간 중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내부신고제의 질적 충실 내지 고도화를 위해 내린 조치다.
일본은 내부신고제의 활성화를 위해 ‘공익통보자보호법’ 말고도 상법(회사법), 자본시장과 관련하여 '기업지배헌장(corporate governance code)', ‘투자가와 기업의 대화 지침’, 민간기업 차원의 ‘기업행동헌장’, 금융기관 관련 ‘준법경영과 리스크 관리에 관한 검사 방법’ 등 여러 법제가 뒷받침하고 있다. ISO37002가 상징하듯이 내부신고제의 활성화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5. 한국 기업, 내부신고 이대로 둬도 될까?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유럽과 일본이 법으로까지 강제하고 있는 내부신고제가 한국에서는 기업이나 정부 어디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경우 정부(입법)보다 앞서 기업들이 스스로 내부신고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추세고 기업에도 실익이 크기 때문이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은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할 때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규범 준수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납품업체나 협력업체까지 따진다고 한다.15) ‘내부신고제’도 ESG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한국ESG기준원’이 2018년 ‘기업지배규준’(corporate governance code)을 고쳐 내부신고 관련 조항을 두었다.16) 비록 강행규정은 아니지만 지키지 않은 기업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유럽, 일본 등에서는 기업의 내부신고제가 법으로 강제되고 있음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다. 이제는 형식적인 운영 여부가 아니라 질적으로 충실한 제도적 의의를 다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업의 가치나 대외적 평판을 올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ISO도 이런 추세에 맞춰 2021년 ISO37002를 내놓으면서 내부신고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17)
교역뿐만이 아니다. 자본시장에서도 ESG경영에 조그마한 결함이 있어도 자본 조달이 어려워진다. 이런 걸 막기 위해 ‘기업지배규준’ 따위를 만들어 자국 기업들을 글로벌 기준에 맞추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업지배(Governance)의 한 내용인 내부신고제의 채택 여부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 할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처하면서 기업의 존망으로까지 휘몰릴 수 있는 위기관리 시스템에 언제까지 무관심으로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다.
2022년 12월 30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자문교수 김옥조
1965~1983: 중앙일보 기자, 부장(대우), 주일특파원
1983~1993: 청와대비서관, 국가보훈처차장, 국무총리비서실장
1993~1998: 언론연구원장, 인천방송사장
1999~2015: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미디어법과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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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부구성원’에는 해당 기업의 임직원뿐만 아니라 퇴직 직원, 거래선 등도 포함된다는 설도 있음.
2) 우리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이 같은 행위를 보호는 하고 있으나(제6조1호) ‘내부신고’라는 용어는 없다
3) https://www.transparency.org/en/blog/internal-whistleblowing-systems-game-changer
4) https://www.iso.org/obp/ui/#iso:std:iso:37002:ed-1:v1:en
5) 山口利昭, 『實效的な內部通報制度』, 經濟産業調査會, p. 8
6) 'Sarbanes-Oxley Act', ‘United States Federal Sentencing Guidelines’
7) https://en.wikipedia.org/wiki/Whistleblower#Internal_channels
8)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2010)’
9) 증권위는 지난 12년 동안 총 328명의 신고자에 13억여 달러의 포상금을 주었다
10) https://www.transparency.org/en/publications/internal-whistleblowing-systems
11) https://www.integrityline.com/expertise/white-paper/eu-whistleblowing-directive/
12) http://www.keidanren.or.jp/policy/cgcb/charter.html
13) ‘체제 정비’에는 내부신고를 접수할 창구의 설치, 내부신고에 필요한 조사의 실시, 조사 결과 위법 사실이 드러난 경우의 시정조치 등이 포함된다.(공익통보자 보호법 제11조)
14) 기업들이 ‘내부신고제’를 실시가 기업의 윤리적 건강을 과시하는 기회로 판단하고 2019년부터 자기 회사가 ‘내부신고’의 객관적 기준에 적합하다는 ‘자기적합 선언’을 하기도 했다.(130여 개 회사)
15) 조선경제, 2022. 12. 21, B1
16) 한국ESG기준원이 만든 ‘감사위원회 모범규준’(2018년) Ⅳ. 3: “(내부신고) 감사위원회는 회사의 직원들이 재무보고나 기타 문제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관하여, 불이익 처우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는 익명신고 방식 등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그러한 신고에 대한 균형 잡히고 독립적인 조사와 적절한 후속 조치에 대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17) https://www.iso.org/obp/ui/#iso:std:iso:37002:ed-1:v1: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