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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칼럼] [기업의 도산에 대한 기획칼럼 2] 도산자의 심리분석

등록일 2024-10-30 14:34:02 조회수 125

바쁘게 지내다 보면 보통 자신의 몸에 나쁜 증후가 나타나더라도 예삿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신체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 급히 병원을 찾게 되고, 자신의 건강 문제에 당황하게 마련이며, 만약 불치의 병으로 판명될 경우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점차 방황하게 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에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면 그 기업에 도산의 병마가 자리 잡아 가더라도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자금에 구멍이 나고, 판매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든지 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며, 막상 자신의 회사가 부도라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 방황과 허탈, 그리고 심한 자책이 뒤따르게 된다.

 

도산자는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도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부터 그 이후의 과정 속에서 도산자의 정신 상태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기 당황기

 

사업을 잘 영위해 오다, 거래처로부터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거나, 매출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생산된 제품의 재고가 쌓이는 등 어려움이 닥칠 때인 이 시기에는 혼자서 고민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숨기면서 처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체면상 부끄러워서, 혹은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개인이나 금융기관의 계속적인 지원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 자신의 회사에 관련된 나쁜 소문이 나지나 않을까, 아니면 회사의 문제점들이 거래 은행 등에 알려질까 두려워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혼자서 고민만 하지말고 오히려 도산을 경험했던 사람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도산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즉 도산예방의 최후이며 최선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제2기 방황기

 

부도, 혹은 도산 직전에 오는 현상이다.

 

최선은 다했지만, 그동안 이용해 왔던 각종 자금원이 막히고 이제는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도와줄 것 같고, 어느 재벌회장이 나의 어려움을 알고 도움을 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러한 허망된 생각으로 잠을 자도 비몽사몽으로 이상한 꿈만 꾸게 되고, 부도의 걱정 때문에 식은땀만 흘리게 된다.

 

이 시기에는 또한 술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방황기는 무엇보다도 아내의 따뜻한 보살핌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제3기 허탈기

 

부도나 도산 직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막상 이 상황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의 초조감이나 긴장된 기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허탈해진다.

 

마치 매를 맞기 전의 조마조마했던 기분이 막상 매를 맞은 후에는 다소 안정되듯이, 결국 도산까지 이르게 되면 후련한 기분마저 든다. 빚쟁이들이 몰려들어도 넋이 빠져 제대로 답변조차 못 한다.

 

이 경우 조심해야 할 것은 사기꾼들에게 당할 위험성이 높으며,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금융기관의 채무를 그런대로 많이 정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몇 채권자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재산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하다 보면 재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변호사나 세무사,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찾아 조언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제4기 부인기(책임회피기)

 

허탈기가 지나면 다음으로 오는 것이 ‘부인(否認)’의 심리상태다.
 

부도나 도산은 자신의 잘못보다 회사의 중역이나 간부들의 잘못으로 발생했고, 은행에서 대출을 안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책임전가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누가 배신했다, 누구에게 속았다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상대방을 증오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에 도산자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오는 동업자, 친구 등과 어울려 음주를 많이 하게 되는데 조심해야 하며 이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제5기 자책기

 

일정기간 후 부인기가 지나면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모든 결과가 자신의 책임이었다는 자책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워지고 또한 부끄러워진다.

 

내가 없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에서 다시는 과거처럼 떳떳하게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사회의 냉대까지 연상하다 보면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다. 도산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이 시기에 목숨을 끊는다. 만약 자살까지 이르지 않아도 노이로제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이 시기 역시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요구되며, 재기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도산자도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불안과 방황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심리상태가 앞에 서술한 어느 단계에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도산자에게는 주위 사람들, 특히 채권자들의 격려가 가장 효과적인 약이라 생각된다. 경제적인 지원 못지않게 도산자에게는 정신적인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팔기회원들의 상담을 통해 직접 느끼고 있으며, 팔기회의 활동도 이 부분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2024년 10월 30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장 南在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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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1993.12.10. 발행된 『再起하는 기업인』 ‘제3장 기업의 도산’에 실린 글을 시대 흐름에 따라 저자가 직접 일부 편집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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